가벼운 비판을 경계하라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논술교사와 학과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시절의 대화 내용이다.
  "너는 무슨 학과에 지원하려고 하냐?"
  "철학과에 갈 거에요."
  "왜?"
  "철학과가 제 적성에 맞는 거 같아요."
  "네놈이 언제부터 무슨 책을 읽었다고 철학이 네 적성이네 뭐네 씨부렁거리냐? 다른 분과도 많잖아. 예컨대 경제라든지 말이지."
  "경제는 철학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좀 하위 분과이지 않나요? 그리고 너무 세속적인 것 같기도 하고... 저는 그런 목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이놈이 이거 위험한 놈일세. 네놈이 언제 경제 공부를 제대로 해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니 놈 글 써놓은거 보면 딱 나와. 계획이나 통제 좋아하고 윤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보면 경제 공부는 손도 안 대봤을 거 같다."
  "하지만 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잖아요. 예전에 글 쓴 것에도 나오지만 대책없는 개방이나 경쟁은 분명히 하위층에 있는 사람들을 굶어죽게 만들 거라구요."
  "잘 들어라. 네가 진짜 어떤 학문을 깊이있게 탐구하다 보면, 네가 그 학문을 쉽게 비판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될 거다. 단지 그 내부 논리가 정합적이기 때문만이 아니야. 제대로 공부를 하다 보면 그 학문에 대해 열정을 가지게 되지. 마음이 동하게 되는 거야. 그러고 나면 네가 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그만 둘 뿐만 아니라 세상을 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될 거야."
  "서울대는 복수전공도 한대요. 그러니까 혹시 하게 된다면 둘 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풋. 네놈이 내 말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지나야 될 거 같구나."

  세상에서 비판만큼 쉬운 것이 드물 것이다. 사람의 눈은 신기해서, 자신의 잘못은 잘 보이지 않는데 다른 이들의 잘못은 잘 보인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에게 보이지 않았던 단점이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생각함에 있어 다른 이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스스로 깊은 사고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을 더 자세히 바라보면 양상은 다르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즉, 비판은 비판이나 유용성을 갖지 못하는 비판들이 많은 것이다. 잘 알지 못하고 공격하는 소위 '비판을 위한 비판'들, 말만 멋드러진 비판들,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비판하는 것들이 비판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 중 가장 질이 낮은 경우는 '비판을 위한 비판'들이다. 예컨대 최근에 전공노가 집회에서 민중의례를 하는 것에 대해 나오는 수많은 비판은 대부분 민중의례나 국민의례의 의미, 그리고 공무원의 의미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단순히 반감이 표출되어 나온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많은 블로거들이 글을 생산하였으니 더이상 말하지는 않겠다) 이런 경우에 비판은 열정적이고 그 말이 날카로울지언정 전혀 유용한 비판이 될 수 없다.

  언어만 고도화된 비판들도 훌륭한 비판인 척하는 저급 비판들이다. 이러한 비판들은 대부분 내용을 독해해보면 낮은 수준의 비판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불필요한 언어 정밀화와 인용을 동원하여 내용의 명료성만 저해한다. 주변의 많은 헛똑똑이들이 이러한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비판이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반증해준다.(이와 비슷한 증상으로는 중2병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다른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논의들 중에는 실제로 언어 정밀화와 정확한 인용이 동반되어야 하는 어려운 주제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거나 대화에서 소외된다는 이유로 그러한 정밀성과 인용 자체를 논의에 불필요하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것은 다음에서 나오는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비판하는 것'에 해당이 될 것이다.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의 비판은 사실 쓸모없는 비판이 아닌 경우가 간혹 있다. 예컨대 역사학의 접근 방식에서 계량사적 접근은 사회 변화 탐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실제로 수치화된 변화 양상이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비판하는 것은 쓸모없는 비판이 된다. 전제 자체가 다른 상황에서 비판을 하는 것은 비판 대상과 연결고리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식민지근대화론이 민족적 당위성을 차치하고서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량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 '양적인 팽창' 뿐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기간에 일어난 한반도 주민들의 사고의 변화, 계급구조의 붕괴와 재구성 등 수많은 변화들은 가시적인 실증만으로는 입증되기 힘들지만 분명히 일어났던 것들이다. 인문학에서 가장 실증을 중시하는 분과 중 하나인 역사학에도 이러한 면이 있는데, 다른 곳은 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판에 있어 염두할 것은, 남들이 이 비판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비판이 과연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떠한 효과를 낼 것인가이다. 비판에 대한 답은 비판만큼이나 쉽다. 하지만 비판에 대한 답이 단지 변명이나 공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실제적인 '개선'이어야 한다고 여긴다면, 비판은 더욱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by 식상한감자 | 2009/10/25 16:38 | 죽어굴러다니는 말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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