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연구소 15차 월례 강연

by 식상한감자 | 2009/11/02 21:12 | Watching TV | 트랙백 | 덧글(2)

헌재의 새로운 명판결

결정과정에서의 위법 사항은 인정한다. 하지만 결정은 옳다?

헌법재판소가 이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는 '사법권이 입법부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입법부 안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헌재 재판관들의 자충수에 해당한다.
 
1. 일단 판결문을 읽어보면 기본 쟁점은 법안 상정 과정에서의 위법성이라고 재판관들 스스로도 이야기했고, 절차가 위법이었다고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과가 법안 인정이면 이것은 재판에서의 기본 쟁점을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2. 재판관들은 판결문에서 대의제의 의의를 들어 입법이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민이 이 입법과정에 제대로 간섭할 수 없기 때문에 간섭의 방법으로써 사법권이 개입한 것이며, 사법권은 이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보장된다. 하지만 재판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3. 재판관들은 본회의 투표 과정에서의 위법성을 덮는 근거로 무권투표 횟수가 전체 결과를 뒤집을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의원들의 투표권은 크게 침해받지 않았다는 논리를 든다. 하지만 2번과 관련, 판결문에서도 대의제를 강조한 만큼 의원 하나하나의 투표권은 각각 수만의 국민을 대표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명의 의원이라도 쾌히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대의제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판관들은 스스로 대의제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을 하였다.

4. 재판관들은 입법과정에서 '일사부재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일사부재의 원칙'은 대의제의 기본 원칙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위법적 요소가 없다고 하였다. 과연 이것이 맞는가? 외압이 본회의의 결정과정에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한 원칙이며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기본 원칙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재판관의 자질이 심히 의심스럽다고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5. 또한 재판관들은 법률의 안정성을 근거로 들어 조그마한 위법성이 법안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논리는 지금까지의 독재정권이 독재적인 결정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활용한 논리들과 별 차이가 없다. 물론 법률의 안정성은 중요한 요소이나, 그것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보장한다면, 그 또한 원칙이 무시됨으로써 법률의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기각한 대논리인 '사법권이 입법부의 결정을 간섭하는 것은 입법권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다'라는 논리는 이 사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건은 법을 지키지 않는 국회의 결정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로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이러한 위법적 요소들이 묵인된다면 사법부 스스로의 권한이 약화되고 제한받게 됨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는 별도로, 분명히 정치적인 문제가 사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점은 우리나라 정치의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치 과정에서 충분한 비판과 토론이 있은 후에 결정이 내려져야 하는데, 날치기의 역사는 60년 전부터 오랜 기간 내려온 한국 국회의 부끄러운 전통이다. 앞으로 정국은 어떻게 흘러갈 것이며, 이것이 앞으로의 입법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인지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by 식상한감자 | 2009/10/29 22:28 | 트랙백 | 덧글(4)

최근 내 생활상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1. 술을 마시는 양이 많다.
  주당 술 두번 정도 마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주워듣고 보니 거의 중독 수준이라는 판단이 생겼다. 사실 생활비 중 상당량(거의 50%)이 술에 들어가고 있고, 요즘에는 알바비 등으로 비용이 충당되니 술 마시는 횟수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최근에 헬스장이나 병원 등지에서도 술에 대해 계속 경종을 울리고 있다. 스스로도 몸이 점점 좋아지지 않는 것을 느낀다.

  2. 담배를 핀다.
  물론 술 마실 때나 한두 가치씩 피우지만, 역시 피우는 횟수가 약간씩 증가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함을 느낀다. 특히 요즘에는 사람들이랑 만나면서 가끔씩은 제정신일 때도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왜 피우지 하고 나중에는 후회를 하면서도 제어가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다.

  3. 컴퓨터 사용량이 많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진보인사들 블로그도 가서 이야기 볼 수 있고, 이오공감이나 스누라이프, DC에서 드립치는 인간들 욕도 혼자 하고 있을 수 있고, 스스로 쓴 글을 몇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라도 해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게 도를 넘어서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컴퓨터 사용시간을 두시간만 줄여도 운동을 하고 책을 한 챕터는 더 읽을 시간이 생긴다.

  4. 편두통이 도진다.
  스트레스가 늘어나서 편두통의 횟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미래 걱정이나 주변 걱정 등도 있고, 당장에 많은 업무량이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고, 가끔씩은 일을 방해할 정도로 심하기도 하다.

 - 쇄신 방안

  1. 술 마시는 양을 절대적으로 줄인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술을 절대적으로 줄인다. 예컨대 동문회나 교수님과의 만남 등. 왠만하면 스스로 술을 마시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술을 마시는 자리를 갔다고 해도 술 마시는 양을 상당히 줄여야 한다. 이는 몸무게가 90kg 이하로 내려가고 건강이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 계속된다.

  2. 담배를 끊는다.
  이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다행히도 주변의 분위기도 괜찮으니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은 의지의 문제.

  3. 컴퓨터 사용량을 줄인다.
  컴퓨터 사용량을 절대적으로 줄인다. 필요한 채팅과 자료 검색만 하고 나머지는 책과 신문에 의지하는 자세를 함양한다.

  4. 편두통을 줄인다.
  이건 딱히 방법은 없지만, 스트레스 해소가 정상적으로 된다면 줄어들 것이다.

  > 그래도 생기는 스트레스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지난 해 상경한 이후 서울을 돌아다닌 적이 극히 없는데, 혼자 훌쩍 돌아다녀 보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고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하니 좋은 스트레스 해소 기제가 될 것이다.
  또한 보드게임 동아리 등 건전한 분위기의 소모임에 참여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다.

by 식상한감자 | 2009/10/28 23:32 | 감자의 소소한 일상 | 트랙백

가벼운 비판을 경계하라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논술교사와 학과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시절의 대화 내용이다.
  "너는 무슨 학과에 지원하려고 하냐?"
  "철학과에 갈 거에요."
  "왜?"
  "철학과가 제 적성에 맞는 거 같아요."
  "네놈이 언제부터 무슨 책을 읽었다고 철학이 네 적성이네 뭐네 씨부렁거리냐? 다른 분과도 많잖아. 예컨대 경제라든지 말이지."
  "경제는 철학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좀 하위 분과이지 않나요? 그리고 너무 세속적인 것 같기도 하고... 저는 그런 목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이놈이 이거 위험한 놈일세. 네놈이 언제 경제 공부를 제대로 해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니 놈 글 써놓은거 보면 딱 나와. 계획이나 통제 좋아하고 윤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보면 경제 공부는 손도 안 대봤을 거 같다."
  "하지만 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잖아요. 예전에 글 쓴 것에도 나오지만 대책없는 개방이나 경쟁은 분명히 하위층에 있는 사람들을 굶어죽게 만들 거라구요."
  "잘 들어라. 네가 진짜 어떤 학문을 깊이있게 탐구하다 보면, 네가 그 학문을 쉽게 비판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될 거다. 단지 그 내부 논리가 정합적이기 때문만이 아니야. 제대로 공부를 하다 보면 그 학문에 대해 열정을 가지게 되지. 마음이 동하게 되는 거야. 그러고 나면 네가 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그만 둘 뿐만 아니라 세상을 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될 거야."
  "서울대는 복수전공도 한대요. 그러니까 혹시 하게 된다면 둘 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풋. 네놈이 내 말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지나야 될 거 같구나."

  세상에서 비판만큼 쉬운 것이 드물 것이다. 사람의 눈은 신기해서, 자신의 잘못은 잘 보이지 않는데 다른 이들의 잘못은 잘 보인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에게 보이지 않았던 단점이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생각함에 있어 다른 이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스스로 깊은 사고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을 더 자세히 바라보면 양상은 다르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즉, 비판은 비판이나 유용성을 갖지 못하는 비판들이 많은 것이다. 잘 알지 못하고 공격하는 소위 '비판을 위한 비판'들, 말만 멋드러진 비판들,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비판하는 것들이 비판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 중 가장 질이 낮은 경우는 '비판을 위한 비판'들이다. 예컨대 최근에 전공노가 집회에서 민중의례를 하는 것에 대해 나오는 수많은 비판은 대부분 민중의례나 국민의례의 의미, 그리고 공무원의 의미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단순히 반감이 표출되어 나온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많은 블로거들이 글을 생산하였으니 더이상 말하지는 않겠다) 이런 경우에 비판은 열정적이고 그 말이 날카로울지언정 전혀 유용한 비판이 될 수 없다.

  언어만 고도화된 비판들도 훌륭한 비판인 척하는 저급 비판들이다. 이러한 비판들은 대부분 내용을 독해해보면 낮은 수준의 비판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불필요한 언어 정밀화와 인용을 동원하여 내용의 명료성만 저해한다. 주변의 많은 헛똑똑이들이 이러한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비판이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반증해준다.(이와 비슷한 증상으로는 중2병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다른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논의들 중에는 실제로 언어 정밀화와 정확한 인용이 동반되어야 하는 어려운 주제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거나 대화에서 소외된다는 이유로 그러한 정밀성과 인용 자체를 논의에 불필요하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것은 다음에서 나오는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비판하는 것'에 해당이 될 것이다.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의 비판은 사실 쓸모없는 비판이 아닌 경우가 간혹 있다. 예컨대 역사학의 접근 방식에서 계량사적 접근은 사회 변화 탐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실제로 수치화된 변화 양상이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비판하는 것은 쓸모없는 비판이 된다. 전제 자체가 다른 상황에서 비판을 하는 것은 비판 대상과 연결고리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식민지근대화론이 민족적 당위성을 차치하고서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량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 '양적인 팽창' 뿐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기간에 일어난 한반도 주민들의 사고의 변화, 계급구조의 붕괴와 재구성 등 수많은 변화들은 가시적인 실증만으로는 입증되기 힘들지만 분명히 일어났던 것들이다. 인문학에서 가장 실증을 중시하는 분과 중 하나인 역사학에도 이러한 면이 있는데, 다른 곳은 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판에 있어 염두할 것은, 남들이 이 비판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비판이 과연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떠한 효과를 낼 것인가이다. 비판에 대한 답은 비판만큼이나 쉽다. 하지만 비판에 대한 답이 단지 변명이나 공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실제적인 '개선'이어야 한다고 여긴다면, 비판은 더욱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by 식상한감자 | 2009/10/25 16:38 | 죽어굴러다니는 말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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